여름

배롱나무꽃과 미륵불이 어우러진 풍경 4. 논산 "관촉사"

레드포드 안 2017. 8. 11.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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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 "관촉사"

고려 제7대 목종 9년(1006)

무려 37년만에 높이 18.12m, 둘레 4m, 귀 3.33m의

은진미륵을 봉안후, 21일동안 1m 되는 미간의 백호 수정에서

찬란한 빛이 발하여 중국 송나라에 이르니,

그곳 지안대사가 빛을 따라 찾아와 배례 한뒤  그 광명이

촛불 같다하여 절 이름이 관촉사라 했다 한다.



반야산 관촉사 "일주문"



"사천왕문"

(절 입장료 1,500원)



석 교



대광명전



백일홍나무와 2층 대광명전



명곡루(출입구)



셀카놀이중 비가 내리고



산사 풍경

명부전, 삼성각,미륵전,윤장대.



경전을 보고 돌리는것 만으로도 불경을 읽는

효과를 얻을수 있다는 윤장대



관촉사를 찾는 많은 분들의 소원 성취를 위하여

발원문을 작성한후 윤장대 안에 넣고 돌리도록 성물을 조성하였다 한다



미륵전에서 바라보이는 은진미륵불



반야산 관촉사 "은진미륵"



삼성각



배례석, 5층석탑, 석등, 은진미륵불



세개의 돌이 하나로 이루어진 관촉사 미륵불은,

우리나라에서 최대의 크기를 자랑하는 석불이자

고려를 대표하는 불상으로 보물 제 218호 이다.



종 각



문화재 자료 제79호. 5층 석탑



국내에서 첫번째 큰 석등은 화엄사 각황전앞 석등(보물제12호)이고

다음 두번째로 큰 석등이 관촉사 2층 석등이다

보물 제 232호



석탑과 삼성각



배례석

너비 40cm, 길이 150cm의 장방형 화강암.

부처에게 제향 할때 대하는 배례석은 화려하고 큰 연꽃 세송이가

무척 아름다우며 조각이 뚜렸하고 보존 상태가 양호하다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53호



석조미륵보살입상



안내도



은진미륵에 대한 설화


고려시대에 은진면에 사는  한여인이 반야산에서 고사리를 꺾다가

아이 우는 소리가 들려 가 보았더니,

아이 대신 큰 바위가 땅속으로 부터 솟아 올랐다.

이 소식을 들은 조정에서는 이 바위로 불상을 조성하라는 징조로 여기고,

혜명에게 그 일을 맞겼다.

혜명은 100여명의 장인과 함께 37년간의 공사끝에 1006년(목종9년)에

불상을 완성하였다.

그러나, 불상을 일으켜 세우기에는 불상이 너무 거대하여 고심에 빠졌다


그러던 어느날,

동자 두명이 삼등분된 진흙 불상을 만들며 노는것을 보았다.

그들은 먼저 땅을 평평하게 하여 불상 아랫 부분을 세우고,

모래를 경사지게 쌓아 중간과 윗부분을 세운 다음

모래를 파 내었다.


이를 본 혜명은 그러한 방식대로 높이 55척 5촌, 둘레 30촌의

불상을 세웠는데, 그 동자들은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화현하여 깨닮음을 준 것이라고 한다.


불상이 세워지자 비가 내려 불상의 몸을 씻어주었고,

상서로운 기운이 21일 동안 서렸으며,

두 눈썹 사이에서 발한 빛이 사방을 비추었다.

이 빛을 쫓아 중국의 고승 지안이 이곳으로 찾아와 예불을 드렸는데,

흡사 촛불의 빛과 같다고 하여,

절 이름을 관촉사(灌燭寺)라고 불렸다.


나라가 태평 하면 이 불상의 몸이 빛나고 서기가 허공에 서리며,

난이 닥치면 온 몸에서 땀이 흐르고, 손에 쥔 꽃이

색을 잃었다는 등의 전설이 내려온다.

그리고 이불상에 기도하면 소원이 다 이루어졌다 한다.



관촉사는

1386년(무왕12년) 법당을 신축하였고, 1581년(선조14년) 거사 백지가

중수 하였으며, 1674년(현종15년) 지능이,

1735년(영조11년) 성능이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한다

미륵불에서 바라본 관음전



윤장대를 돌려보는 관람객



단아하고 기품이 있어 보이는 미륵전은 단청이 아름답다



석등 사이로 얼굴을 내미는 백일홍나무꽃



속세를 내려다보는  미륵불의 용안



백일홍꽃이 붉게 타오르는 절 마당



나무아미타불 관세움보살



간간이 내리던 비는 굵은 빗방울이 되어 하나,둘 떨어지고



우산도 없이 산사에 오른 나는 소나기를 피해 명곡루로  


                                                             

                                                                                                         석문(石門)

                                                     (해탈문: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79호)

                                                               양쪽에 돌 기둥을 세우고 널찍한 판석을 올려놓은 것으로

                            참견때 쇄도 하는 참배객을 막기 위하여 성을 쌓고 사방에 문을 내었던것 중

                                                         동문(東門)에 해당하는 것이다